제목만 보고 선택한 영화.
처음엔 유쾌하고 가벼운 로맨스를 기대했다. 하지만 《괴짜들의 로맨스》는 그런 예상을 뒤엎고, 섬세하고도 묵직한 감정선을 따라가는 독특한 영화였다.
반복되는 일상 속, 관계의 틈입
주인공 바이칭은 신경성 강박증과 결벽증을 앓고 있다. 손 씻기, 물건 정렬, 외출 등 모든 일은 일정한 순서와 방식으로 반복되어야만 안심할 수 있다.
한 달에 단 한 번 외출하는 바이칭은 철저하게 무장한 채 지하철을 탄다. 그곳에서 자신과 닮은 한 여성을 만난다. 그녀의 이름은 천징. 그녀 역시 강박 증상을 앓고 있으며, 3시간 이상 외출하면 몸에 두드러기가 생기는 증세를 갖고 있다.
바이칭은 천징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던 중, 그녀가 초콜릿을 훔치는 모습을 목격한다. 말은 걸지 못했지만, 천징은 자신이 산 소독약을 건네며 “입막음용”이라고 말한다. 그날 이후, 바이칭의 엄격한 생활 패턴은 점차 흐트러지기 시작한다.
닮은 결함이 만들어낸 특별한 연결
둘은 서로의 존재에 호기심과 위안을 느낀다. 천징은 바이칭에게 ‘소울메이트 친구’라 말하며, 연락처를 교환한다. 화실에서 누드모델로 일하는 천징의 삶은 바이칭에게 낯설고 불편하다. 그는 천징을 먹여살리겠다며 번역 일을 함께 일하자고 제안한다.
천징은 타자 대회 1등 수상자. 손이 느린 바이칭의 업무를 도와주며 함께 번역을 시작한다. 점점 가까워진 두 사람은 동거를 시작하고, 게임을 통해 자신들의 강박을 깨기 위한 실험에 돌입한다.
세균 견디기, 쓰레기 줍기, 재활용장 가기, 키스 도전까지. 하지만 이 모든 시도는 번번이 실패로 돌아간다. 심지어 키스 후 “너무 더러운 것 같다”는 그들의 말은 이들의 현실을 냉정하게 보여준다.
변화가 찾아왔을 때, 사랑은 어떻게 되는가
그러던 어느 날, 바이칭의 강박증이 예고 없이 사라진다. 자유로워진 그는 자신이 변했다는 사실을 실감하지만, 여전히 강박 속에 사는 천징과의 사이에는 미묘한 균열이 생긴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라는 말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서로 닮아 사랑했던 두 사람은 이제 달라진 현실 앞에서 혼란을 느낀다.
그리고 강박증이 사라진 천징의 모습도 보여준다. 강박증이 사라진 이후의 삶의 변화는 누구에게도 좋은 모습은 아니다.
영화는 이렇게 말한다.
“사랑할 때 상대방의 단점은 전부 장점이 되지만, 사랑하지 않을 때 그 단점들은 치명적으로 변한다.”
“끝내야 할까? 내 행동이 상대방을 다치게 하기 전에.”
연출과 배우들의 섬세한 호흡
이 영화는 과장 없는 연출과 절제된 대사로 두 인물의 심리를 따라간다. 대만 영화 특유의 쓸쓸하고도 따뜻한 분위기가 장면마다 스며 있다.
임백굉(바이칭 역)은 극도로 예민한 인물을 차분한 눈빛과 반복되는 몸짓으로 탁월하게 표현했고, 사흔영(천징 역)은 무심하고 자유로워 보이지만 상처와 결핍을 지닌 인물을 설득력 있게 연기한다.
두 배우는 ‘로맨틱 케미’보다는 ‘공존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현실적인 관계를 보여준다. 이 점이 오히려 더 큰 여운을 남긴다.
사랑은 공통점 위에만 세워질 수 있을까?
《괴짜들의 로맨스》는 사랑의 본질에 대해 조용히 질문을 던진다.
공통된 결함이 관계의 시작이 될 수는 있지만, 그 결함이 사라졌을 때 관계는 여전히 유효할까?
이 영화는 “사랑은 변한다”는 말 대신, “사랑은 끊임없이 변화 속에서 이해하고 조정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한 줄 감상
사랑은 닮음으로 시작되지만, 결국은 다름을 끌어안는 일이다.
《괴짜들의 로맨스》는 그 어렵고도 아픈 진실을 섬세하게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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